10.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0.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오늘은 초복 날이다.
“꼭꼬댁 꼬댁 꼬꼬꼬오”
잰걸음에 날개까지 퍼득거리며 달아나는 장닭의 뒤를 쫒느라고 칠뜨기는 혼줄이 난다. 잡힐만 하면 날개를 퍼득거리며 요쪽 조쪽으로 날래게 빠져 나가니 도무지 잡을 수가 없다. 벌써 마당으로부터 뒤란까지 세 바퀴나 돌았다. 힘도 빠지고 숨도 차고 등에는 땀이 범벅이 되어 골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려 속옷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이 꼴을 보고 있던 말째 동숙이 핀잔을 준다.
“오빠는 게우 달구 한 마리도 못 잡는단 말여?”
“대간해 죽겄는디 말시키지 말어”
“달구장에 모이 줘 놓고 모이 먹으러 들어가면 그 때 들어가서 잡으면 되잖여 곰팅이같어”
곰팅이 같다는 말에 불끈 했으나 칠뜨기는 힘주어 참았다. 아주 쓸만한 명답이 나왔잖는가.
머슴살이 첫해에 초복을 맞았다. 이른 아침 읍내 택시를 불러 장에 나가던 박 초시가 칠뜨기를 불렀다.
“칠복아 오늘은 초복이니 닭 한 마리 잡아 정지에 내주어라.”
“네 알았슈, 주인어른 어떤 닭을 잡을까유?”
“흉악스럽게 생긴 장닭을 잡아라”
“네 알것슈 잘 댕겨 오셔유”
닭 한 마리 잡아 놓으라는 박 초시의 명을 받고 “어떤 닭을 잡을까요” 했더니 가끔 종아리를 쿡쿡 찍어대는 장닭을 잡으라 한다. 주인도 몰라보는 장닭은 주인이 모이를 주러 제 앞으로 갈 때에도 훼를 치면서 으름장을 놓다가 사정없이 맨살을 주둥이로 찍었다. 칠뜨기의 종아리에도 피멍이 몇 개나 들 정도로 싸낙배기인 이노무 장닭이 오늘은 제삿날이 되는 것이다.
싸낙배기 장닭은 제 운명을 눈치 챘는지 모이통에 모이를 놓아 주어도 도시 닭장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헛 매질로 몇 번이나 허탕을 치며 이리치고 저리 돌아 온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칠복이와 장닭을 보면서 동숙은 입술을 비쭉이며 한 마디 내 뱉었다.
“꼭 칠뜨기 같어”
“뭐라? 치일뜨기?”
주인 딸이라 어찌 해 볼 수도 없는 칠복은 펄펄 뛰었다. 걸뱅이 시절의 찬란한 그 이름이 아니던가. 약이 오를 데로 오른 칠복은 마당에 놓여 있는 지갯대를 잡아들고 장닭을 좇았다. 사정권 안에만 들어오면 단매에 보내버릴 심산이다. 한참을 싱갱이 하다 보니 장닭도 어지간히 힘이 빠진 듯 싶다. 장닭을 꼬려 보며 마지막 한방을 노리던 칠뜨기가 아차차 하는 사이에 장닭이 퍼드득 거리더니 외양간 지붕 위로 훌쩍 날아 올라갔다.
“꾀꼬댁 꼭꼭 꾀꼬댁”
외양간 지붕 위에 날아 오른 장닭은 훼를 치면서 아래에서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칠복을 향해 꾀꼬댁 하고 울었다. 마치 칠복을 향해 비웃는듯한 울음소리에 칠복은 그만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다만 지갯대로 땅을 쿡쿡 쥐어박을 뿐이다.
“그려 암만 봐도 칠뜨기가 맞어” 열어 두었던 방문을 쿵 소리 나게 닫으며 동숙은 콧소리로 비웃었다.
“뭐여? 그렇잖아도 부아가 오르는디 쪼꼬만 것이 까불고 있어” 칠복은 씩씩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흥 오빠는 큰가? 나보담 작으면서...”
혼잣말인데 어떻게 들었는지 귀도 밝다. 움찔한 칠복이 한 마디 하기를
“아이고 냅사둬 아무려면 동숙이 보담 작을까” 겨우 한 마디 했다.
“오빠는 뭐 키만 크면 큰 것인 줄 아는가벼”
“그럼 키 말고 뭐가 커야 하는건디?”
“정신연령이 커야 하는겨 그것도 몰러? 꼭 바보같어”
“끄응”
외양간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장닭에 시선을 꽂아 두고 있는 칠복이가 끄응하고 입맛을 다시는 사이에 갑자기 장닭이 푸드득 하고 날아올랐다. 날아 오른 장닭은 옆집 외양간 지붕에 머리를 찧으며 파드득거리며 앉았다. 칠복은 지갯대를 쥐고 허둥지둥 장닭을 좇아야 했다.
“아이고 이노무 달구새끼가 옆집 외양간 지붕으로 날아갔네. 어쩐다냐”
허둥대는 칠복의 말에 방문이 열리며 동숙이 뛰쳐나왔다.
“뭐여 금자네 집에 우리 달구가 날아갔단 말여?”
“그려 시방 훌쩍 날아서 옆집으로 도망갔어”
“우이 씨~”
성격이 활달하고 다소 급한 갈개머리 동숙은 급하게 신을 신고 금자네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동숙이와 금자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개교기념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중이다.
“큰일이여 점심때까지 달구를 잡아 놔야 하는디. 오빠는 달구 한 마리 못 잡어? 남자가 되어가지구 그것도 못혀?”
동숙이 어지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칠복을 보며 핀잔을 주었다.
“달구가 날아 댕기는디 어떡혀, 한 번도 달구를 잡아 본 적도 없는디”
“뭐여? 달구를 한 번도 못 잡아 봤어? 그람 오빠가 달구를 잡아서 목만 비틀어 놔. 내가 다 할테니께”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 그런지 이 집 여자들은 보통 남자보다 더 남자같이 생겨 먹었다. 칠복은 갈개머리를 하고 있는 동숙이를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았다. 쌍꺼풀이 진 눈에 갈색의 눈동자가 또렷하며 눈매는 활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콧날은 반듯하고 콧구멍이 크고 입술은 얇은 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아 있다. 아직 소녀티가 나지만 상당한 미인이다. 거기에 남성들 보다 더 털털하고 진솔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가히 여장부 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음이 새삼스럽다. 키도 우뚝하니 늘씬했고 봉긋한 가슴과 실팍한 엉덩이는 잘록한 허리를 경계로 하여 상당히 육감적이다. 허벅지의 살은 어찌나 탱탱하던지 툭하고 건드리면 탱탱소리가 날 것 같다. 벌써 다리에 난 솜털이 거뭇하다. 가까이에서 동숙을 보니 그만 칠복의 가슴이 철렁하더니 뒤이어 덜덜 떨려온다.
칠복은 금자네 집에 가 본적도 없을뿐더러 금자네 식구와는 겨우 눈인사를 할 정도로 친분이 거의 없었다. 자연히 동숙이 앞장을 서고 칠복은 뒤에 어정쩡한 모습으로 따라갈 뿐이다. 작대기는 단단하게 그러 쥐었다. 잠시 동숙의 뒷모습을 보는 동안에 동숙의 여성스러움에 칠복의 가슴은 격탕이 일었고 그 여운은 마치 종소리의 여운과 같아서 오랫동안 칠복의 가슴에 잔음을 남겼다.
“금자야~이”
“동숙이여? 웬일이여 뭔 일이 있어?”
금자가 방문을 열고 마침 마당에 들어서는 동숙을 보며 댓돌에 내려서려다가 칠복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하도 날이 더운지라 겨우 가릴 것만 입고 있던터에 남정네와 마주치니 금자는 황망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후다닥 옷을 입고 다시 나오는 금자의 뺨에는 노을이 져 있었고 칠복 또한 계면쩍어 금숙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마당에 꽂았다.
“우리 집 달구새끼가 너그 집 외양간 지붕으로 날아왔어”
“그려 그럼 어쩐댜”
금숙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칠복은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발까지 동당거리며 걱정하고 있는 금숙의 동작에서 성품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는 처자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사람에 대한 시각이 남과 다른 깊이를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푸드득”
마당에서 외양간 지붕을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장닭이 어디에서 힘을 얻었는지 또 한 번 훼를 치며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마당을 가로질러 금숙이네 집 지붕 위에 미끄러지듯 착지를 하더니 떠억하니 버티며 훼를 치는데 모가지를 최대한 길게 빼 내며 폼나게 울어재낀다.
“꽥꼬댁 꽥꽥 꽥꼬댁 꽤오~”
“저저저 마한 놈의 달구새끼”
동숙이 지붕 위에 있는 장닭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기가 막힌 듯 소리 질렀다.
“어머, 어머 저걸 어쩌 웃기는 달구여”
금숙도 어지간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집 지붕을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콩콩 뛴다.
“저저저 ”
칠복은 지갯대로 장닭을 가르키며 저저저 하다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지갯대로 마당을 후려쳤다.
한 바탕의 소동을 치루고 나서 간신히 제집 닭장으로 돌아온 장닭을 잡아서 모가지를 비틀었다. 칠복은 어지간히 약이 오를 대로 올라 닭 모가지를 도끼로 내려치려고 하다가 동숙의 핀잔을 듣고 모가지를 비틀었다. 한 번 비틀기도 어지간히 힘들만큼 장닭은 기세와 기운이 등등했으나 일단 한 번 비틀어지니 세 번을 비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동숙은 닭 모가지를 비틀고 있는 칠복에게 세 번을 비틀라고 주문했다. 장닭의 눈은 흰자위를 보이며 겨우 버둥거리고 있으나 칠복에게 잡힌 날개는 이미 힘이 빠져 있다.
동숙은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 집안에는 동숙과 칠복이만 남겨져 있었고 할머니와 주인아주머니는 박 초시를 따라 읍내택시를 불러 타고 영동 장에 갔기 때문이다.
드디어 털이 뽑히고 내장이 처리된 장닭이 두 다리를 가지런히 하늘을 향해 뻗친 채 가마솥 안에 고이 모셔졌다. 동숙은 인삼 두 뿌리와 대추를 두어 주먹 넣고 거기에 찹쌀을 듬뿍 넣고 국물을 넉넉히 부었다. 가마솥에서 김이 나고 닭 삶은 냄새가 퍼질 즈음에 영동 장에 갔던 박 초시 일행이 읍내택시를 타고 도착하였다. 택시에서 내리는 박초시의 손에는 수박이 들려 있었고 고등어자반과 돼지고기가 닷 근 택이나 들려 있다. 주인아주머니의 손에는 딸들의 신발과 여러 가지 생필품이 들려 있었는데 칠복의 신발과 여름 옷 등속도 함께 들려 있다.
거무튀튀한 벼슬이 쭈뼛하니 독 오른 독사의 머리처럼 오똑 서 있던 장닭의 머리와 유난히도 맨살을 찍어댔던 주둥이하며 닭발 그리고 닭 내장과 국물은 누렁이 몫으로 돌아갔다. 박 초시는 누렁이 밥을 주면서 슬며시 누렁이의 배를 만져 보았다. 새끼들이 뛰노는 촉감을 통해 언제 출산을 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누렁이의 배속에 들어 있는 새끼들은 며칠 후 며칠 후 하는 듯 울퉁불퉁 하고 있다.
초복 날의 해가 기웃하더니 낙조를 뿌려 놓는다. 낙조는 태양의 그림자를 물감으로 삼아 온 사위를 물들이고 내일을 기약한 채로 재 너머로 떨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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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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