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돌아서는 발걸음
8. 돌아서는 발걸음
김천역에 도착한 칠뜨기는 어지간히 망설였다. 거지꼴로 돌아온 자신을 반겨줄 것도 아니었거니와 칠순이까지 죽음으로 내몬 큰 아버지 식구들에 대한 원한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칠뜨기는 큰 아버지 식구들에 대한 원한의 깊이를 알지 못했고 그 원한의 대상이 큰 아버지와 그 식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쫓아 보낸 것이며 칠순이를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며 등이 뼈골에 깊숙이 남아 씻을 수 없는 원한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을 뿐이다.
큰 아버지의 집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칠뜨기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아니라는 것과 지금까지 큰 아버지 집에 살고 있었다고 해도 이제는 나와야 할 곳이 아닌가 하는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발걸음을 향하면 향할수록 멀어져 가는 피붙이에 대한 환상과 최소한의 기대감마저 소멸되어 갔다. 지금 들어가면 나도 칠순이처럼 죽어서 나올 뿐, 어머니를 만날 기회는 영영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가슴 철렁한 예감으로 칠뜨기의 발걸음은 멈추고 말았다.
“그래 죽으면 죽는거야. 못 먹어서 죽게 되면 앵벌이라도 해서 살아 남을거야.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발걸음을 돌리니 복장 속에서부터 뜨거운 물이 솟구쳐 올라온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칠뜨기는 하늘을 보았다.
“하나님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살려 주세요. 울 엄마를 만날 때까지 나를 살려 주세요. 엄마를 만나고 나면 죽어도 좋습니다.”
의지가지도 없는 칠뜨기는 그길로 발걸음을 돌렸고 대전역을 목표로 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굳게 앙다문 칠뜨기의 머리 위로 한 줄기 겨울의 모진 삭풍이 지나가고 있다.
추위에 벌벌 떨며 직지사를 거쳐 하루를 걸어 겨우 신암역에 도착했다. 밤은 이슥했고 저만큼 떨어진 곳에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 사이로 함박눈이 쏟아진다. 춥고 시린 어깨 위로는 한설이 쌓이고 삭풍이 전신을 훑고 지나는 듯 손과 발이 저리도록 시려왔다. 미끄러지는 신작로를 따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걸었으나 맹추위에는 도무지 견디어내지 못하겠다. 대구나 김천지방의 겨울날씨는 맵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겨울에는 유독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 아마도 추풍령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쪼르륵하며 빈창자에서 천둥을 치는 소리가 지나간다.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먹고 싶을 만큼 한 그릇의 국밥이 절실한 칠뜨기였다. 칠뜨기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보안과장이 넣어 주었던 얼마의 돈을 꽈악 움켜쥐었다. 굶기를 밥 먹듯 했던 서울 가던 길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래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기름진 국밥에 길들여져 있단 말이더냐. 사람의 입맛처럼 간사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신암 역전앞 국밥집 문을 열었다.
“국밥 주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며 머리와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털었다. 팔이며 다리에 묻어 있는 눈도 털었다. 칠뜨기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눈을 터는 동안에 주모는 측은한 눈으로 칠뜨기를 모양새를 살펴보고 있다. 얼굴과 귀는 동상에 걸린 듯 빨갛게 얼어 있다. 손등은 때가 덕지덕지 떠깨비를 이루고 있는데 떠깨비진 사이로는 살이 터졌고 튼 살에는 가는 딱지가 줄을 지어 앉아 있다. 아무래도 사연이 있는 소년 같았다. 하지만 눈빛은 선했고 어깨에는 사무친 외로움과 서글픔이 배어 있다. 간간이 뿜어져 나오는 눈빛의 기상은 이 젊은이의 영혼이 시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뿐 전체적인 모습은 서글픈 인생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모는 측은한 마음에 난로 앞의 자리를 내어주며 서둘러 국밥을 말았다. 난로 위에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가 김을 뿜고 있었고 눈발이 굵게 내려서 그런지 아니면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손님은 없었다.
연탄에 하루 종일 은근히 고아낸 사골국물은 진하고 고소했다. 주모는 진한 사골국에 밥을 넉넉히 넣어서 서너 번을 말다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잠시 고민을 해야 했다. 진한 사골국물을 이대로 먹으면 필경 배탈이 나겠지. 주모는 사골국물에 우거지를 넉넉히 넣고 적당량의 물을 넣어 불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총각, 국밥은 쪼매 있어야 나올 것잉게. 이것 좀 먼저 들고 있으시오”
주모는 칠뜨기의 눈을 깊이 응시하면서 전라도 사투리로 맛깔스럽게 말하며 쟁반에 담겨 있는 머릿고기 중에서 살코기로만 고른 수육과 새우젓을 곁들여 한 접시 내어 놓았다. 구수한 숭늉 한 대접과 돼지머리살코기 한 대접이 상위에 내려지자 칠뜨기는 화들짝 놀라며 겁부터 났다.
“아녀유 지는 이것 안 시켰구먼유. 국밥 한 그릇만 달라고 했어유”
칠뜨기가 깜짝 놀라 얼굴이 빨개지며 손을 흔들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주모의 가슴 저 아래에서 응어리져 있던 비릿한 아픔이 소리 지르며 지나간다.
개성에서 난리를 피해 부산까지 피난을 내려 왔다. 전쟁 통 그 난리에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부모 없는 고아신세가 되어 걸식을 하며 지내야 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가슴에 싸아한 파도가 지나간다. 피난 시절에 언 손을 호호 불며 유리창 너머 식당 안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있던 이들을 훔쳐보며 배회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움찔 몸을 떨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질기고 아픈 옛날의 소름끼치는 이야기들. 사람이 죽으면 어디 멀리 갔다가 오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철부지 시절에 너무나 많은 시체를 보며 살아야 했다. 전쟁 통에 죽은 시신인지라 하나같이 험하게 죽은 시신들이었고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죽은 어린아이들의 시체들도 즐비했다. 방치된 채로 얼마나 지났는지 반쯤은 썩어 입은옷 사이로 유골이 드러나고 썩은 시체의 물이 아직 질질 흘러나오고 있는 끔찍한 몰골도 많이 보았다.
진하고 질긴 것이 목숨이라고 했던가. 진한 것은 피요, 질깃질깃 질긴 것은 명줄이었다. 모진 세월 속에서도 명줄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겨우 역전앞 주막이었으나 그래도 이 주막 덕분에 자식 다섯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켰고 공부시키고 있는 중에 있다.
막내아들 택이나 되었을까. 남루한 입성에 더부룩한 머리 꼴하며 꺼칠한 얼굴과 터서 험해진 손등에서 주모는 부산 피난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쩌자고 20여년이나 30년이 가까워 오는 어간의 그 참담한 시절이 불현듯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부산역전 앞에 모여서 구걸하던 또래의 걸뱅이 오빠들 틈바구니에 끼어 구걸을 하면서 밥 한 술 배불리 얻어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 시절. 그래 그 시절의 오빠들 모습하고 어쩌면 이리 닮았더냐. 주모는 칠뜨기의 몰골에서 걸뱅이 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을 앓았다.
“부글부글”
우거지 사골 국이 끓고 있다. 주모는 끓고 있는 사골 국에 고기를 듬뿍 넣었다. 칼칼하지 않도록 고춧가루를 피하고 고추장을 약간 넣어서 기름기를 상쇄시키고 여기에 갖은 양념을 넣고 대파를 종종 썰어 고명으로 듬뿍 얹었다. 뚝배기 하나 가득 국을 담고 밥은 고봉으로 담았다. 밥값은 안 받겠다고 마음에 작심을 하고는 온갖 정성을 다해 상차림을 했다.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저 소년에게 밥값을 받으면 벌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드는 주모의 속내였다.
칠뜨기는 주모가 내오는 상차림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바가지를 옴팍 씌울 모양인가 보다 하고는 지레 짐작을 하면서 속으로 벌벌 떨었다. 칠뜨기의 표정을 보고 주모는 웃으며 안심시켜 준다.
“총각 오늘 밥값은 안 받을 터이니 걱정 말고 마음껏 들어요.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밥 값이라우”
주모의 따뜻한 말과 눈앞에 펼쳐져 있는 국밥의 상차림에 눈길을 보낸 칠뜨기의 얼었던 몸과 마음이 풀어졌다.
“참말로 고맙십니더. 고맙십니더”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고향 사투리가 저절로 나오고 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면서 칠뜨기는 어느덧 밥과 국을 절반이나 비우고 있다. 콧물이 흘러 훌쩍거리며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더니 또르륵 흘러내린다. 빨간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먹음직한 빨간한 김장김치는 멸치젓국물을 넉넉히 넣었는지 구수하니 입에 척척 달라붙는다.
*
아버지는 김장을 할 때면 언제나 김장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 놓고 기다렸다. 품앗이 김장을 했던지라 달력에 누구누구네 집 김장이라고 써 놓고 어머니는 우리 집보다 먼저 김장을 하는 집에 가서는 함께 김장을 하곤 했다. 그런 때마다 어머니는 노란 배추 속쌈에 젓국물과 곰삭은 멸치를 듬뿍 넣어 버무린 속을 한 쟁반 듬뿍 담고 삶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무국을 한 바가지 들고 오시곤 했다. 이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드시라고 싸 준 것이었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흡족한 얼굴로 냠냠 맛있게 드셨다. 물론 우리들은 어머니 치마꼬랭이를 붙잡고 가는 특권이 있는 혹들이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먹고 왔다.
아버지는 특히 신선한 굴을 좋아 하셨는데, 어머니는 잘 절궈진 노란배추 속쌈에 부러 굴을 듬뿍 넣어서 버무려 막걸리 한 통과 함께 내왔다. 그런 날에는 칠순이와 나는 배추꼬랭이를 얻어먹는 기쁨이 있었다. 아드득하고 깨물리면 알싸하고 달큰한 맛이 나는 배추꼬랭이는 김장철에만 얻어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
잘 버무린 김치는 위포기 잎으로 꽁꽁 손으로 싸매서 차곡차곡 김장독에 쟁여진다. 마지막으로 울어난 김치 국물을 남김없이 손으로 쓸어 붓고 나서 물러서면 아버지는 그 위에 좋은 짚을 골라서 잔뜩 질러 넣었다. 그리고는 김장독 옆에도 짚으로 한웅큼씩 질러 넣어 공백이 없도록 단속을 하고 나서 김장독 뚜껑을 닫았다. 우리는 겨우내 먹을 김장으로 세독을 묻었다. 첫 번째 독은 시방부터 먹기 시작해서 양력설 전후로 먹을 것이다. 두 번째 독은 양력설을 전후로 해서 음력설 때까지 먹을 것이다. 세 번째 독은 음력설부터 다음해 3,4월까지 먹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 두 번째 독에서 꺼내지는 김치를 제일 좋아 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가끔 아직은 덜 익은 두 번째 독의 김치를 꺼내서 썰어 내 주시곤 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어머니 볼에 뽀뽀로 감사의 표시를 하곤 했다.
아아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숨이 막히도록 보고 싶다.
*
주모는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훔쳐내는 칠뜨기를 보았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뼈아픈 사연이 있기에 밥을 먹다 말고 저리 눈물을 흘리는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따끈한 것을 먹을 때에는 나를 사랑해 주신 어머니나 아버지가 생각난다. 비릿한 것을 먹을 때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난다.
주모는 따끈한 국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칠뜨기에게서 어버이를 잃은 고아의 진득한 아픔을 보았다. 김치에 젓가락이 많이 가는 것을 보고 주모는 이내 뒤뜰로 나가 김장독에 묻어 두었던 김치를 꺼내 썰었다. 측은한 마음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 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주모는 깊은 마음속으로부터 동정하며 어린 총각이 앞으로 눈물 빼는 날이 없게 해 달라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마음으로 김치를 정성껏 보시기에 담아내어 놓았다. 무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총각 고향은 어디요?”
“네 신암 안쪽 마을이 고향이여유”
“그럼 집은 어디인데?”
“....”
“몇살이나 되었노?”
“열다섯, 아니 열여섯이 되었십니더”
칠복은 달력을 보고 그제야 새해를 넘겼음을 알았다. 가슴에 싸아한 통증이 밀려온다. 설 명절에 밥 한 그릇 얻어먹을 곳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얼추 밥그릇을 비우고 있는 칠뜨기에게 주모는 다가앉으며 측은한 표정으로 물었다. 칠뜨기는 무언가 감사의 보답을 하고 싶었던 참에 주모가 물어 오니 고마운 마음에 정성껏 대답했다. 하지만 고향과 집을 묻는데 울컥 하고 명치끝에 무언가가 틀어 막힌 듯 숨을 제대로 못쉬겠다.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에 고만 칠뜨기의 눈에는 눈물이 핑글 돌았다. 눈자위가 빨개지는 칠뜨기의 모습을 보며 주모는 칠뜨기가 얼마나 외롭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지를 연륜으로 꿰어 뚫었다.
주모는 칠뜨기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한 소금 쏟아냈다. 아무리 비정한 세상이라도 해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동세대를 살고 있는 동배로서 아무리 선하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칠뜨기의 큰 아버지의 처사에는 분노가 일어나는 터이다. 하지만 칠뜨기 앞에서 말을 삼갔다. 그것은 칠뜨기의 상처에 분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아픔의 날들이 얼마나 되겠나. 수많은 날을 생각하고 또 곱씹어 보면서 자신의 인생에 참혹한 아픔을 주었던 운명과 맞붙어 싸워야만 한다. 아직은 상처를 삭히고 가라앉혀야 할 때이다. 비로소 큰아버지를 이해할 나이가 되면,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잊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설 수 있을 때까지는 어린 가슴에 분노가 일어나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섣부른 비난이나 비판은 분노를 야기시키고 그 분노의 에너지가 분출되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 자칫 생을 망가뜨릴 수 있겠기 때문이다.
아아~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토록 어린 나이에 가슴이 아리도록 아픈 사연이 많은 것인지, 주모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동병상련이런가. 활활 타오르는 연탄난로도 칠뜨기의 시리고 칼끝처럼 저며 오는 예리한 아픔을 어쩌지 못한 채 겨울의 한 밤이 깊어갔다.
주모는 칠뜨기를 홀 안에서 재웠다. 마음 같아서는 막내아들과 함께 자라고 하고 싶었으나 예고도 없이 불쑥 불청객을 들여 분란을 자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모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이불과 베개를 가져다가 의자를 붙여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암 걱정 말고 편히 자그라. 퉁시는 문 열고 나가면 뒤란에 있다. 그리 알고 맘 편히 묵고 자그라”
“고맙십니더. 우찌 보답을 해야할지 내사마 모르겠십니더”
자리를 펴주는 동안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칠뜨기는 허리를 굽신하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야 참말로 니 발 안 씻었제? 꿉꿉할기라. 이리 따라 온나”
주모는 칠뜨기가 벗는 신발을 보다 말고 주방 안쪽으로 칠뜨기를 몰고 가서 대야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난로에서 김을 내고 있던 주전자를 가져와서는 대야에 붓고 찬물을 섞어 손을 넣어 보고는 칠뜨기에게 발을 씻으라 권했다. 칠뜨기는 내친 김에 손과 얼굴을 씻고 그 물에 발을 씻었다. 금방 대야에 담긴 물은 구정물로 변했다.
주모는 이제야 생각이 난다는 듯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칠뜨기에게 소금을 내어 주며 손가락에 묻혀 양치질을 하라고 권한다.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썩썩 이를 닦으니 입안이 개운해진다. 양치질까지 하고 나니 온몸이 날아갈 듯 상쾌해진다. 주모는 물끄러미 이 꼴을 보고 있다가 혀를 찼다.
주모는 안집으로 들어가고 칠뜨기는 자리에 누웠다. 창밖에는 아직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며 창틀에 소복이 쌓였다.
날이 밝자 부리나케 일어난 칠뜨기는 이부자리를 개어 놓고 깔고 잤던 의자는 원래에 있던 자리를 찾아 그대로 해 두었다. 다행인 것은 홀과 안집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어색한 자세로 식구들과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모는 홀 안에 있는 칠뜨기를 깨우기 위해 부러 왔다가 칠뜨기가 오래 전에 일어난 것을 보고는 안쓰러움과 칠뜨기의 몸에 밴 부지런함에 적이 안도하는 눈치였다.
“잘 잤더노. 아침 묵어야제, 배 고프것다. 잠 기둘리그라”
“괘안십니더. 지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더. 아줌씨 덕분에 잘 잤십니더. 고맙십니데이”
“오냐 잘 잤다니 됫대이. 어데 아픈데는 엄나?”
“없십니더.”
“봐라 칠복아 니 갈데 엄시믄 여 있그라. 엄동설한인데 우찌 길을 가겠노”
“아입니더. 어무이 찾아야 캅디더. 우야든지 대전까지는 가 볼라케요”
“안 된다. 길 가다가 얼어 죽는데이. 여 창고로 쓰던 방이 있으니까니 치워줄꾸마 여서 자고 잔심부름 좀 해 도. 월급도 준다”
“아이고 아줌씨 월급까정 주신다 케서요? 그 말이 증말인교”
“그렇다카이, 쪼매 줄란다. 그래 있어 보겠노?”
“그리 폐를 끼쳐도 되겠는교. 고마 그냥 있어보겠심더”
“아이다. 느 대전가면 어무니 찾을 때캉 뭐 묵고 살라카노. 내가 생각해 주꾸마”
“고맙십니더. 고맙십니더”
“약조했으니까네 시키는 일 잘해 주그라. 인자 밥 묵자”
주모는 밥과 국을 고봉으로 담아 내왔다. 그 날부터 칠뜨기는 음력설을 지나 삼월까지 고향 땅인 신암역 앞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숙식을 제공 받아 한 겨울을 넘겼다. 한 겨울에 어디 허드렛일이라고 해 봐야 짐승을 거두는 것도 아니요, 산에서 나무를 해 오는 것도 아니니 주막과 안집 마당 사이를 오고 가며 배달하는 일이나 찬거리 등을 주모가 사서 담아 주는 대로 리어카에 싣고 오는 정도였다.
그동안 술손님의 이야기 중에 칠복의 집안 일이 회자되기도 했다. 저들은 남의 일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나 스쳐가며 듣는 칠복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칠복이 가족이 떠난 집은 1년 사이에 부자가 죽어나간 재수 없는 집이라 하여 큰 아버지가 헐값에 내어 놨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방치된 채로 흉물스런 폐가가 되었단다. 한술 더 떠서 그 집 가까이에 가면 어린아이의 유령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도 했다.
어느덧 칠복의 집은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칠복은 그 말을 듣고 온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이제 충분히 현실에 적응하여 자신의 불행을 현실로 받아들인 줄로 알고 있었으나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던 집이 폐가가 되고 귀신이 나오는 집이 되었다는 말에 고만 살을 저며 드는 아픔과 슬픔을 참아낼 수가 없다. 어쩌다가 집안의 불행이 술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안주거리가 되어 잘근잘근 씹히게 되었는지 억울해서 못살겠다. 어린아이의 원혼이 떠돌며 슬피 울고 있다는 말에 고만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 칠순이는 귀신같은 것 안 되여. 너무나 어리고 착해 빠져서 귀신같은 것은 될 수도 없어”
칠순이와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칠복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입을 막고 울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의 엄동설한의 날씨라고 해도 칠복의 가슴에 내린 서릿발보다 더 시리고 추울 수는 없었다.
칠복이 주막을 떠나는 날, 주인아주머니는 못내 서운해 하면서 붙잡았으나 뜨내기손님도 없고 동리 손님만 있는 썰렁한 주막에 사람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이미 칠복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아주머니는 남편과 자식들에게 칠복을 왜 데리고 있느냐는 원성도 가끔 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말이 없었으나 칠복은 안집에서 흘러나오는 큰 소리를 듣고 알았었다. 더 이상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될 일이다.
칠복은 주인아주머니가 싸준 보퉁이와 3개월 동안 월급으로 쌀 한말 값을 받았다. 칠복이 너무 많다고 사양했으나 주인아주머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무 말도 말라고 칠복이에게 주의를 주며 칠복의 봉창에 찔러 넣어 주었다. 보퉁이에는 칠복이 입고 왔던 옷가지와 새신이 한 켤레 양말이 두 켤레 들어 있었고 무명천으로 만든 속옷과 엄마가 칠순이에게 마지막 으로 사 준 예쁜 꽃신이 들어 있다. 칠순이는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이 꽃신을 끌어안고 울었다. 칠순이가 죽은 날, 칠순이의 신을 태워야 저승에 갈 수 있다고 내어 놓으라고 하는 것을 울며불며 가슴에 끌어안고 내어놓지 않았던 꽃신이다. 칠순이는 이 꽃신 하나만 남겨 놓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칠복은 어머니가 주시고 간 지전 중에 쓰고 남은 돈과 주인아주머니가 봉창에 찔러 넣어준 돈을 잘 갈무리하여 보퉁이 안쪽에 깊이 넣었다.
사흘을 걸어 밤이 이슥하여 영동에 도착했다. 영동역까지 오는 동안 칠복은 역무원들의 눈치를 보며 역전 대합실에서 보퉁이를 끼고 잠을 잤다. 칠복은 허기를 이기지 못하여 역전 앞에 있는 싸구려 국밥집에 들어가서 국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웠다. 그 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싸구려 떡과 국수를 먹은 것이 고작이니 국밥 한 그릇은 호사였고 어지간히 망설이다 호기를 부린 끝에 먹은 국밥이다.
영동역 대합실은 크고 넓었다. 밤차는 이미 떠났고 새벽 통근차가 오려면 충분히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혹시 역무원이 눈치를 주고 쫓아내지는 않을까 내심 조바심을 내면서 칠복은 대합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이가 좀 들은 아주머니가 열차 시간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는 모양새가 열차 시간표가 자신의 계획과 맞지 않는 듯 하다.
갑자기 뱃속이 요란해지더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역 화장실은 역무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개찰구로 나가던지 아니면 역무원 출입구를 통해 사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개찰구로 나가던지 역무원 출입구로 나가던지 간에 급히 볼일을 봐야 하겠는데 보퉁이가 문제이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개조된 재래식 화장실인지라 좁아 터져서 보퉁이를 어디 놓아 둘만한 곳도 화장실 안에는 없을뿐더러 눈치를 보며 잠을 자야 할 텐데 보퉁이를 들고 왔다 갔다 했다가 역무원 눈 밖에 나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겠나 하는 염려가 앞선다. 흘낏 보아하니 열차시각을 보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뜨였다. 후덕해 보이는 아주머리라 믿어도 되겠다 싶다.
“아주머니 지가 뒤가 급해서 그런디 댕겨 올 동안 이 보따리 좀 봐주셔요. 금방 댕겨 올께요.”
“그려, 걱정하지 말고 싸게 댕겨 와”
칠복이 화장실에 다녀 올 동안 보퉁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니 아주머니가 흔쾌히 그러마 한다. 칠복은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용무를 보았다. 급히 먹은 국밥 탓인지 아니면 과식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눈이 노래지도록 설사를 했다. 뒤처리를 하려고 그제야 휴지를 찾아보니 아뿔싸 휴지가 없다. 두리번거리다가 화장실 문을 열고 보니 화장실 바닥에 신문조각이 떨어져 있다. 그것으로 뒤처리를 하고 대합실에 왔는데 그만 대합실이 썰렁하다. 보퉁이를 맡아 주마고 했던 아주머니와 보퉁이가 함께 사라졌다. 혹시 아주머니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 보퉁이를 두고 갈 수 없기에 가지고 간 것이려니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대합실 시계는 칠복이 화장실에 다녀온 시각이 5분이 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어두운 밤거리에서 사람을 찾는 일도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려니와 보퉁이를 끼고 있는 아주머니는 없다. 역전을 중심으로 몇 시간을 실성한 사람처럼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고 해 보았건만 찾지 못한 채 새벽통근차 시간이 되었는지 역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칠복은 보퉁이를 잃어버린 채 영동역전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낮에는 혹시나 하여 이런 저런 아주머니를 못 보았느냐고 수소문하여 다녔고 밤에는 역전 대합실에서 웅크리고 잤으나 사흘이 지나니 역무원이 쫓아냈다.
영동역전에서 읍내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길가에 사당이 있고 그 사당 옆에는 상여를 모셔 두는 창고가 있는데 마을 공동소유의 상여를 모셔두는 곳이다. 역전 대합실에서 쫓겨난 칠복은 밤이 이슥해지기를 기다려 상여창고에 들어가 잠을 잤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머리칼이 쭈뼛하고 서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으나 익숙해지자 아예 상여 안에 들어가서 시체처럼 몸을 뉘이고 잠을 잤다.
역전에 나타날 때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다 오직 보퉁이를 훔쳐 달아난 아주머니를 찾기 위해 눈에 핏발이 서 있는 칠복의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동전을 던져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칠복은 땅에 떨어진 동전을 주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 동전으로 국수를 사먹고 떡을 사먹으며 버티었다.
박 초시의 눈에 띈 그 날도 보퉁이를 들고 달아난 아주머니를 찾아 이리저리 빙글거리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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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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