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쇠장수 박초시
4. 쇠장수 박 초시
땟꼬장 물이 줄줄 흐르던 몰골로 박 초시와 만난 것은 1966년 5월 중순을 넘어가고 있던 영동의 장터였다.
여름으로 달음질하는 일기는 매일 밤과 낮의 일교차가 컸으나 더부살이 하는 인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쇠장수를 하고 있던 박 초시는 영동장터에서 비루먹은 개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던 칠뜨기를 보았으나 부러 외면했다. 꼴이 사흘은 굶었을 꼴이었고, 입성은 남루하여 거지 중의 상거지와 같은 몰골이었다. 끌고 온 암소 두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를 후한 값으로 팔고 실한 암송아지 두 마리를 시세보다 헐한 값으로 사서 장터 앞 장국집 앞에 매어 놓고 낫낫한 기분이 되어 대포 한잔을 걸게 마셨다.
주모는 살짝 곰보였는데, 손맛은 일품이라 막걸리와 함께 내어주는 술국의 맛이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 나물을 무치는 손은 희고 소담스럽게 어여뻤다. 이제 30대 후반일까 40대로는 안 보이는 주모의 펑퍼짐한 엉덩이와 탄력 있는 봉긋한 젖가슴은 팔을 올릴 때마다 탱탱한 젖무덤이 슬쩍슬쩍 비쳤고 눈이 시리도록 뽀얀 속살이 기름져 보였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들러 대포 한잔을 깔끔하게 마시고 술값도 후히 주고 가는 박초시를 마다할 주모는 영동바닥에 없었다.
박 초시는 흥정이 잘 되어 낫낫해진 기분인데다 주모가 은근슬쩍 눈짓을 하며 따라주는 대포 한 사발에 흐뭇해지고 넉넉한 마음이 되어 술맛이 달았다. 살며시 손을 잡아주면 주모는 어디든지 자신을 따라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서히 포근 달큰한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앙상을 부리며 달게 휘감아 올 뽀오얀 주모의 젖무덤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목울대로 생침이 꿀꺽 넘어갔다. 한번쯤이야 어떻겠나. 이렇게 흥정이 잘 되어 기분이 좋은 때에는 한번쯤 작심을 하고 허리띠를 풀고 싶었다.
“술국이 식었나 봐유, 다시 퍼다 드릴께유”
주모는 살며시 허리를 꼬며 다가오더니 식은 술국사발을 한 손에 거두며 고개를 뒤로 젖혀 주고 있는 박 초시 얼굴 앞에서 한 손을 뻗어 탁자 끝에 있는 수저통을 기웃거렸다. 박 초시의 얼굴 앞에서 드러난 주모의 풍만한 젖가슴은 박 초시의 얼굴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웠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뜨겁게 달아 오른 박 초시의 어깨에 주모의 뜨거운 샅이 밀착되어 왔다. 홑겹 치마를 두른 주모의 뜨겁게 달아 오른 두덩의 감촉이 세밀하게 느껴지고 있다. 일순 격탕이 일고 박 초시의 깊은 욕망에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박초시의 내면에 격탕이 일고 있음을 눈치 챘는지 주모의 몸짓은 노골적이 되어 버렸다. 주모가 쌔액쌔액 내쉬는 깊은 숨에는 이미 단 내음이 퍼져 나오고 있다. 샅을 밀착한대로 허벅지에 힘을 주는 주모의 몸짓에 박 초시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으나 싫지 않았다. 손을 뻗어 주모의 젖가슴을 꽈악 움켜쥐어 보고 싶은 욕망이 불일 듯 일어났으나 박 초시는 꾸욱 눌러 참았다. 어느새 박초시의 어깨는 주모의 뜨거운 두덩의 굴곡 깊은 쪽을 향하여 움직여 가고 있었다.
갑자기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며 “주모 여기 대포 한 사발 주시유” 하는 걸쭉한 소리가 나더니만 소장에서 미처 흥정을 끝내지 못했던 동료 소장수 몇이 불쑥 들어섰다. 문을 여는 드르륵 소리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보다 더 크게 두 사람의 귀를 진동하였다.
주모는 퍼뜩 놀란 채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달아 오른 얼굴을 동시에 추스르느라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박 초시 역시 어찌나 놀랐던지 들이쉬던 숨이 중간에 멈추어 기침을 하고나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전작이 있어 얼굴이 붉어진 채로 있어서 망정이지 박 초시 역시 얼굴이 뜨끈해졌다. 머쓱해진 박 초시 앞에 뜨거운 술국사발이 다시 놓였다. 짐짓 주모는 박초시의 다리를 제 다리로 투욱 치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전작이 있는 것을 보니께 오늘 흥정이 아주 잘 된 모양이네유. 박 초시 어른 후한 값 받으셨시유?”
“그려 오날은 흥정이 아주 잘 된 날이여. 그래 김 주사도 흥정이 잘 되었던가”
“아이고 아녀유 오늘은 통 재미를 못 봤구먼유. 그래도 박 초시 어른 흥정이 잘 되었응게 제 기분이 좋지유. 맛나게 드셔유”
“고맙네 오날은 내가 대포 한 사발씩 내겠네. 염려해 주어서 고맙고 말이여”
“주모 오날 술값은 내가 셈할 터이니 대포 한 사발씩하고 술국 잘해서 내어 주게”
박 초시의 인심 쓴다는 말에 주모가 생긋 웃으며 몇 마디 추어준다. 박 초시는 그제야 창밖 너머 장터를 보았다. 창문 유리창 아래쪽 3/4은 빨간색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위쪽 유리창은 햇볕이 들어오도록 부러 칠하지 않았다. 박 초시는 고개를 빼어 물고 장터를 살펴보았다. 새로 산 암송아지 두 마리는 말뚝에 고삐가 매인채로 장바닥에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암송아지 두 마리를 양쪽 손에 고삐를 잡고 끌고 가는 일은 벅찬 일이었다. 새 주인과 눈이 익지 못한 송아지인지라 어느 쪽으로 뛸지 모를 일이다. 일행이 있다면 고삐를 쥐어주고 동행할 수 있으련만...
박 초시는 입맛이 사나운지 소리 내어 입맛을 다셨다. 장터를 살펴보던 박초시의 눈에 한 소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몰골로 몇 날이나 밥을 못 먹었는지 뱃고래가 찌부러져 늘러 붙어 버린 그 소년이다. 동냥 꾼인가 해서 소년의 거동을 유심히 살피던 박 초시는 사람 앞에 손도 내어 밀지 못하고 하릴없이 장터를 배고픈 강아지처럼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 측은해졌다. 까짓 동료 소장수에게도 대포 한잔씩 돌린 호기로 말한다면야 저 소년의 짜부러진 뱃고래 한 번 채워주지 못하겠나 싶다.
“주모 내 잠시 송아지 좀 보고 오겠네”
주방에서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고 있는 주모에게 한 마디 건네고 박 초시는 문을 열고 장터로 나왔다. 장터 밥집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는 소년 앞으로 박 초시는 성큼성큼 다가가 소년을 불러 세웠다.
“꼴을 보니 배가 무척 고픈 모양이로구나. 일거리를 주면 일을 하겠느냐.”
“네 어르신 어떤 일이라도 시켜만 주시면 달게 하것구만유.”
“그래 나를 따라 오너라. 우선 뜨끈한 국밥부터 먹어라.”
거지 중에 상거지 같은 소년과 함께 들어서는 박초시를 보고 주모는 하품을 하듯 입을 쩌억 벌리며 놀랐다.
“주모 여기 국밥 넉넉히 해서 푸짐하게 한 사발 담아내어 주게”
“박 초시 어른 그 소년은 영동장터의 각다귀인디유. 어찌 국밥을 다 내시는지 모르겠시유.”
“이 사람아 소년 몰골을 봐 굶어죽기 직전인디... 박 초시 어른 잘하신 일이지유. 어이 학상 감사하다고 인사 잘 혀. 박 초시 어른은 양반 중의 양반이시니께”
고개를 떨구고 박 초시의 얼굴을 마주 못보고 바닥으로 눈을 깔고 있는 소년은 다시금 박 초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목욕을 못했는지, 이발을 하지 못한 머리는 수세미가 엉켜 있는 듯 했고 몸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났다. 소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박 초시는 비록 때가 범벅이 되어 있으나 얼굴빛으로 나타나는 성실함과 순종적인 성품에 마음이 갔다. 고아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소년임이 분명했다. 어디 마땅히 잠잘 곳도 없어 이슬을 맞고 자는 짐승 아닌 짐승의 생활을 하고 있을 터이다. 내 집 외양간에는 송아지도 이슬을 피하고 살고 있는데 차마 사람으로 태어나서 짐승보다 못한 처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이 서글퍼졌다. 서글퍼지는 마음은 그대로 소년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피어났다. 그래 소년이 밥을 먹고 나면 사정의 자초지종을 듣고 무엇을 해야 할런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 싶어 소년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모습에 시선을 두었다. 소년은 벌써 한 사발의 밥과 뚝배기의 술국을 비우고 있는 중이다.
“주모 여기 대포 한 사발 더 주고 밥하고 술국하고 고봉으로 내어오게”
주모는 주문을 받으며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미처 끝내지 못한 박 초시 와의 맛깔스런 애무와 더불어 온몸이 녹자지근하게 퍼지도록 진한 정사를 꿈꾸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만 거지 중의 상거지를 데리고 들어 왔으니 이런 불상사가 어디에 있겠나. 그저 국밥이나 양껏 먹이고 돌려보낼 줄로 생각했던 주모는 국밥을 내려놓으며 박 초시가 이 소년에게 송아지 고삐를 쥐어주고 박 초시의 집으로 가겠다는 소리를 듣고 김이 샜다. 잔뜩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주모의 바람기는 풍선의 바람이 빠져 짜부라들 듯 짜부라 들고 말았다. 주모의 애타는 바람을 짐짓 모른 체하는 박 초시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괜스레 얼굴이 상기되고 분한 마음에 말투까지 뾰족해지는 주모였다.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며 눈으로 매어달리는 주모를 뒤로 하고 박 초시는 소년을 이끌고 장터로 나왔다. 고삐에 묶인 송아지는 어지간히 무료한 듯 되새김질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고 장꾼들은 하릴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참견하는 객꾼을 불러 세우며 물건을 내어 보이며 흥정하기에 여념이 없다. 소년은 박 초시의 뒤를 따라 두 손을 모으고 어깨를 늘이고 줄레줄레 따라왔다.
박 초시는 송아지 고삐를 풀어 양손에 쥐고 눈짓으로 소년을 뒤에 붙이고 앞섰다. 아직 해는 기울기 전이라 늦은 봄의 햇살은 따갑게 내려 쪼였고 장터를 벗어나 신작로를 따라 가는 길 옆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고삐를 잡힌 송아지는 주인이 영 낯이 설은지 종종걸음으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며 가끔씩 투랭이질을 하곤 했다. 송아지의 뚜걱거리는 걸음과 목에 달린 요령소리에 놀란 길가 섶에 있던 메뚜기들이 화들짝 날아올랐다. 하릴없이 뒤를 따르고 있던 소년이 신경에 쓰이는지 박 초시는 가끔 뒤를 보며 걱정 말고 따르라는 듯 인자한 표정으로 소년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신작로는 고갯마루를 향하여 하얀빛을 반사하며 길게 그어져 있었고 아지랑이가 아롱이고 있다. 박 초시의 발걸음은 고갯마루를 향하고 있고 고삐를 잡힌 송아지들도 어지간히 길이 들었는지 느릿한 걸음으로 눈치를 보며 걷는다. 송아지가 걷는 리듬에 따라 두 마리 송아지의 목에 걸린 쇠방울 소리가 불규칙한 화음을 만들며 정겹게 들려왔다. 저 멀리 고갯마루를 향하여 오르던 자전거는 힘에 부친 듯 초로의 어른이 자전거 안장에서 내리더니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는 후아후아 부채질을 하며 힘들여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네 이름이 뭣이냐”
“제 성은 박 씨이고 이름은 칠복이라 캅니다”
“좋은 이름이구나. 일곱 가지 복을 타고 났으니 말이여 헛헛헛.”
“그래 본관은 어디냐.”
“밀양입니더”
“그렇더냐, 대종가로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이리 꼴이 사나워졌느냐 쩟쩟”
박 초시는 소년이 일가인 박 씨라는 것과 칠복이라는 이름에 그만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다. 머쓱해져서 머리 뒤 꼭지를 손으로 긁던 칠복에게 박 초시의 다음 말이 신작로를 가르며 들려왔다.
“고아더냐, 아니면 양부모님이 살아 계시더냐”
“제가 열 살 때에 아버지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셨구유. 엄니는 서울로 돈 벌러 가셨는디 여즉 소식이 없시유”
“쩟쩟”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박 초시는 뒤를 돌아 칠복이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이제 고개마루 턱에 올라섰다.
“잠시 쉬어가자꾸나. 옛다 고삐를 단단히 쥐거라”
고개 마루턱에 구릉진 곳이 있었고 구릉진 곳을 오르면 늙은 상수리나무 그늘이 있었다. 박 초시는 늙은 상수리나무를 턱으로 가르키며 오른쪽 손에 말아 쥐고 있던 송아지의 고삐를 풀어 칠복이에게 넘겨준다. 황송한 듯한 표정으로 고삐를 받아 쥔 칠복이는 자신의 오른손목에 고삐를 말아 단단히 거머쥐었다.
늙은 상수리나무의 그늘은 여간 많은 이들이 애용을 한 듯 상수리나무 아래에는 풀들이 잦아져 있었고 큼직한 독짝 몇이 놓여 있다. 박 초시는 송아지들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풀이 많이 있는 곳을 골라 나무 가지에 고삐를 매어 주었다. 칠복이가 끌고 온 송아지는 좀 떨어진 곳에 고삐를 매어 놓았다. 새 주인에게 낯가림을 하느라고 그런지 신작로 옆에 먹음직하게 자란 풀도 못 본체 하고 경계하고 있던 송아지들은 싱그러운 풀내음과 맛나게 자라난 풀을 보자 제 세상을 만난 듯 경계를 풀고 이내 긴 혀를 빼어 풀을 감아 뜯기 시작했다. 무성한 상수리나무 그늘 밖으로 언뜻언뜻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은 여간 눈이 부신게 아니다. 얼마만이던가. 밥다운 밥을 먹어 본 것이......
박 초시의 뒤를 따라 송아지 고삐를 단단히 손에 감아쥐고 칠복이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신작로는 끝이 나고 지계석에는 옥천군의 표지가 새겨져 있다. 박 초시와 칠복은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다. 나지막한 둔덕 아래로 초가집 지붕이 보이며 길게 뻗어 있는 길 주변에 잘 정돈되어 있는 논에는 한참 기염을 토하며 자라나고 있는 나락들의 푸르른 모습이 정겹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 굴뚝에서는 저녁을 짓는지 낮게 퍼지는 연기 사이로 평안이 넘치고 있다. 칠복은 정취가 물씬 풍기는 목가풍의 정경에 넋을 빼앗겼다. 깊은 폐부로부터 긴 한숨을 토해내고 있는 칠복의 뒤로 낙조가 떨어지고 있다.
박 초시와 함께 두 마리의 실팍한 암송아지를 이끌고 마을 어귀 정자에 도착하니 마을회관 나무 간판에는 큼직한 까만 글씨로 “옥천군 동이면 우산리 마을회관”이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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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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