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무너진 움막
7. 무너진 움막
“후리가리다 튀어.”
짧은 외마디 소리를 뒤로 하고 칠뜨기는 깡통을 들고 가마니 자리를 말아 옆구리에 차고 뛰었다. 뛰어서 도착한 염천교 다리 아래의 움막은 몇 가지 잡동사니를 흔적으로 남겨놓고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턱까지 차는 숨을 간신히 참고 심호흡을 하기도 전에 처절한 움막의 모습을 보면서 칠뜨기는 한동안 망연자실해 넋이 빠지고 무릎에 힘이 빠졌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는 칠뜨기의 어깨를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나꿔챘다.
경황이 없는 중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니 어느 사이에 순경 몇이 들이닥쳐 칠뜨기를 에워싸고 있다. 눈을 들어 보니 염천교 다리 위에서는 새마을 모자를 쓴 구청의 높은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시를 내리고 있다. 칠뜨기는 거미줄에 잡힌 나비의 파득임처럼 순경에게 잡힌 채로 파드득거리며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의 차디찬 감촉과 따드득 소리를 내며 손목을 조여 오는 아픔에 자지러지듯 놀라 공포와 불안에 사지를 벌벌 떨었다.
그 밤에 칠뜨기는 파출소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죄목은 구걸죄였고 주거부정과 공무집행방해였다. 칠뜨기를 취조한 순경은 칠뜨기가 자신의 주소를 대지 못한다는 것으로 공무집행죄에 해당된다고 했다.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김천에 있는 큰 아버지가 보증을 서 주어야만 풀려 날 수가 있는데 보증을 서주는 사람이 없으면 청소년보호시설로 보내진다고 했다. 칠뜨기의 나이는 고아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보호시설로 보내진다고 했다. 칠뜨기는 다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처량한 눈빛으로 애원을 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출소 유치장은 닭장처럼 분주해졌다. 겨울철에 동사할 위험이 있는 시설물에 대하여 철거하고 연고자가 없는 부랑인은 보호시설로 보낸다 했다. 일부는 죄목에 따라 경찰서로 송치되었고 뚜렷한 범죄 사실이 없는 칠뜨기와 몇은 보호자가 인수해 갈 때까지 임시로 보호한다고 했다. 식사가 들어 왔다. 백반이라는데 불량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죄인들에게 국가가 내리는 밥상이니 잘 먹고 개과천선하라는 말로 순경은 애국심을 표현하고 있다. 칠뜨기는 허겁지겁 백반을 비웠다.
몇몇 부랑자들은 노골적으로 칠뜨기를 향하여 적개심까지 표출하며 짐승을 대하듯 했으나 칠뜨기는 이에 동요하지 않고 백반을 비워냈다. 냄새에 익숙한 칠뜨기야 별반 문제가 없었으나 칠뜨기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퀴퀴하다 못해 시궁창 냄새가 나는 터에 어찌 밥을 먹을 수 있겠느냐고 순경에게 불만을 토로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그러면 먹지 말라는 대답밖에 없었다.
구석에 몰린 칠뜨기 주변을 경계로 하여 일정한 선이 그려졌다. 군용담요 몇 장으로 얼굴까지 끌어 덮어 코를 막고 둘둘 말아서 애써 잠을 청하고 있는 이들 틈에서 칠뜨기도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파출소 유치장은 형광등 불이 켜져 있어 담요로 눈을 막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설핏 잠이 들었을까. 고래고래 소락대기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술 먹고 싸움질하다 잡혀 온 몇몇이 시시비비를 가리느라고 소란스럽다.
아마도 큰 아버지는 자신을 데리러 서울까지 오지 않으리라. 함께 살던 동안에도 그리 살갑게 곁을 주지 않았던 큰 아버지가 서울까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기대는 고사하고 아예 생각의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청소년 보호시설이라는 곳은 감방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던 왕초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에 가면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라 했다. 군대식이기 때문에 잘 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도록 맞아 죽는 살벌한 곳이 거기라 했다. 왕초는 그곳 시절이 생각난다며 이를 갈았고 그쪽을 보고는 오줌도 눌 생각이 없다 했다. 과연 그런 곳에서 배겨날 수 있을까. 염려가 깊으면 깊을수록 몸을 뒤채었고 칠뜨기가 몸을 뒤채는 만큼 유치장에 함께 있는 이들은 코를 감싸 쥐었다.
결국 몇 날이 되도록 큰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후리가리가 내린 뒤로 길거리에 나와 있던 앵벌이들이 많이 잡혀 서울에 있는 보호시설은 이미 정원수가 다 찼다고 했다. 이미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전력이 있는 녀석들이 이제 잡혀가면 악명이 높은 불광동 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라고 했다. 거기는 철조망도 높고 경비가 삼엄해서 탈출은 꿈도 못 꾸는 곳이라고 했고 감옥중의 감옥이라고 했다. 하루 밤 동안 같이 있다가 끌려간 앵벌이가 전해준 말로 인해 칠뜨기의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오늘 밤이 가면 내일은 어디론가로 이송되어 갈 것만 같았고 그곳은 불광동에 있다는 그 보호시설일 것이 분명했다. 칠뜨기는 잠을 설치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칠순이와 함께 살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밥을 주면 먹고 화장실에 보내주면 화장실을 다녀왔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어깨 넘어 들려오는 소리로 경찰서 보안과장이라는 높은 분이 파출소를 순시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칠뜨기는 혹시나 그 높은 분이 유치장을 둘러보고 자신을 속히 이송하라는 명령을 내릴 것 같아 적이 불안해졌다. 이제는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보안과장이 순시 중에 유치장을 둘러보면서 보고를 받고 있다. 담당순경은 칠뜨기의 죄명을 소상히 보고 했고 보안과장은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 있는 칠뜨기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꼬며 의문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담당순경의 보고대로라면 앵벌이 외에 다른 죄목이 없는 터이다. 특히나 눈빛이 선하고 나이에 비해 몸이 왜소한 특징에 악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소년의 죄목으로는 보호시설에 수용할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보안과장은 무언가 남다른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담당순경에게 되물었고 담당순경이 쭈뼛거리며 속 시원히 보고를 하지 못하자, 눈짓으로 담당순경을 물리고 칠뜨기를 풀어 의자에 앉게 했다. 칠뜨기가 어머니를 찾기 위하여 서울에 3개월 동안 걸어서 올라왔다는 것과 칠뜨기에게 닥친 불행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는 동안에 과장은 칠뜨기의 말에서 거짓을 찾아내려는 듯 칠뜨기의 눈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확인하는 차원에서 질문한 질문에 칠뜨기는 사실을 답했고,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 보안과장은 칠뜨기를 귀가 조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직 일가친척에게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이며 큰 아버지가 칠뜨기의 유산을 담보한 공식적인 후견자임으로 큰 아버지가 칠뜨기의 일신을 책임져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다고 해도 피붙이는 보아 주게 되어 있다는 것이 보안과장의 철학이었다. 보안과장은 자신의 철학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결국 보안과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이 칠뜨기를 보증한다고 풀어주라고 했다. 김천까지 가는 차표를 끊어 주어 돌려보내라고 명을 내렸다. 그리고 잠바라도 사서 입고 신발도 틈실한 것으로 사서신고 가라고 얼마의 돈까지 손에 쥐어 주었다. 칠뜨기는 꿈이냐 생시냐 하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듯 다만 눈을 꿈뻑꿈뻑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보안과장의 철학은 착각에 불과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에 자식이 주렁주렁한 집에는 입 하나 더해지는 것은 곧 불행의 씨앗이었고 그대로 짐 보따리이며 덜렁거리는 혹에 불과했다. 광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적어도 제가 먹을 것이 풍족해야 남의 입도 챙겨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입하나 더해지는 것. 그것은 죽고 사는 문제의 단초였다. 제 자식 거두어 먹이는 것조차 힘이 들어 남의 집 식모살이를 떠나보내는 판국이며 남의 집 머슴으로 제 아들을 팔아넘기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린 세상이 아니던가.
어떤 모진 아버지는 딸아이를 술집 기생(그게 말이 기생이지 술집 작부였다)으로 팔아 치우고 받은 알량한 돈으로 밭 뙤기라도 사서 농사를 일구는 비정한 아버지들도 많았다. 밥그릇 수 보다 더 많은 자식들의 입이 저승사자같이 벌리고 있으니 그 입을 어찌 다 채워줄 것인가. 숨이 터질 듯 죽을힘을 다해도 넘지 못하는 고개가 바로 보릿고개였다. 먹지 못해 얼굴에는 누렇게 부황이 뜨고 푸성귀만 먹어서 그런지 뱃고래는 이유 없이 불룩해져갔다. 피골이 상접할 대로 상접해진 아이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부모는 장리빚을 내었다. 장리빚으로 먹거리를 사 놓아도 얼마 못가 동이 나곤 했다. 늘 푸성귀만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려 머리만 커다란 아이들이 손가락을 빨아 먹고 다녔다. 사정이 이러니 먹고 사는 문제는 인정 보다 우선되었던 시절이다.
부모가 있어도 힘겨운 시절에 칠뜨기는 천길만길 까마득한 천애에 떨어진 비극의 인생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는 피붙이의 인정 보다 우선되었던 불행한 시절에 태어난 칠뜨기는 천길만길 까마득한 비극의 천애에 떨어진 서글픈 인생이었다.
다만 칠뜨기는 지금 큰 아버지의 버린 짐 보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신세가 서글퍼질 뿐이다. 염천교 다리 밑 걸뱅이 생활 3년은 그렇게 해서 막이 내렸다.
|
총신80회동문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