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먼동이 터오는가
9. 먼동이 터오는가
이른 아침 동이 터오기 전에 일어난 칠뜨기는 뒷간 옆에 붙어 있는 외양간을 부러 기웃거려 보았다. 어제 사 온 송아지 두 마리는 칠뜨기와 눈이 마주치자 벌써 밥 먹을 때가 되었노라고 통방울 만한 눈을 뒤룩거리며 뒷간에 가는 칠뜨기를 바라보고 있다. 뒷간문은 가마니로 잘 짜여진 거적문인지라 열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들추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조금 기둘려라 일마들아”
괴춤을 내리며 칠뜨기는 부러 힘을 주어 송아지들에게 자신이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널리 고하며 오줌통에 소변을 보았다. 5촉 자리 전구의 희미한 불빛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나 곧 꺼지고 말리라. 오줌통 옆에는 장군이 있었고 오줌장군 옆에는 똥 장군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오줌장군은 오지로 만들었다. 항아리처럼 가로로 세워져 있었고 양 옆에는 손잡이가 있어서 오줌통이 없는 집에서는 오줌장군을 오줌통으로 사용하곤 했다. 오줌장군을 오줌통으로 사용하는 집은 아들이 많은 집이거나 아이들이 아직 어리거나 해서 뒷간 출입이 여의치 않은 집이었다. 방마다 요강이 하나 정도는 배치되어 있었음으로 요강에 볼일을 보고 오줌장군에 붓거나 아니면 마당에 있는 두엄에 부어버리면 되는 일이다.
오줌장군을 지는 때는 마늘농사를 짓는 때에나 사용하곤 했는데 가끔은 무나 배추밭에도 나누어 뿌려주는 때도 있다. 오줌 양이 많은 집은 이래저래 거름도 걸게 되었기 때문에 채소가 잘 되었고 실했다.
세로로 누워져 있는 똥 장군은 보통 지게로 운반을 했으며 운반 중에 튀거나 흘러내리지 않도록 통나무를 깎아 만든 마개를 단단히 막아 사용했다. 똥 장군은 논농사나 밭농사 등에 두루 사용되어졌는데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할 때에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썩혀 두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보통 똥 장군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시작하는 초봄과 김장철 준비를 위한 늦은 여름철 두 번에 걸쳐 사용하곤 했다. 무엇보다 인분을 썩히기 위해서는 야산 혹은 밭 귀퉁이를 넓게 파서 저장해 두어야 했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썩어서 거름에 쓸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에는 그 냄새로 인해 여간 고초가 아니었다. 가을 김장철에 사용할 거름은 봄철에 작업을 해 두어야 했다. 똥장군으로 옮겨온 거름은 그 위에 흙을 덮어 두는데, 한달쯤 지나면 아래에서는 썩으면서 물로 변한다. 거름통 주변에는 똥파리들과 알 까러 온 모기떼로 인해 심히 괴로웠다. 물로 변해버린 거름은 흙으로 덮을수도 없다. 이래저래 애를 먹어야 했다.
종종 개구쟁이들은 살짝 흙을 뿌려 놓은 똥통에 아차차 하는 사이에 빠져가지고는 사나운 몰골로 온 동네에 냄새를 진동시키며 엉엉 울면서 등장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니 한 두 녀석이 그 꼴을 당한 것이 아닌지라 똥 장군이 떴다 하면 개구쟁이 녀석들에게는 비상이 걸리고 개구쟁이 녀석을 둔 어머니들에게는 초비상이 걸렸다. 농촌에 살다 보니 한 두 번씩은 당하는 일이었다. 똥통에 빠지면 똥독이 오르기 때문에 빨리 씻어내야 했다.
아아 나도 그랬었다. 어머니는 욕지기를 연신 해대며 수세미로 북북 문질렀다. 그 추운 날에 마당에 홀랑 벗겨놓고 똥독을 빼야 한다며 수세미로 북북 문질러댔다. 나는 살을 벗겨내는듯한 고통에 자지러지졌으나 발목을 움켜쥐고 북북 문지르는 어머니는 연신 욕지기를 해댔다. 어머니는 욕지기가 나올 때마다 아이고 이 천치야, 아이고 이 등신아, 아이고 이 칠뜨가를 외치며 등짝을 한번씩 후려 갈겼다. 나는 사추리를 잡고 벌벌 떨면서 혹시 여자아이들이 훔쳐 보고 소문을 낼까 두려워서 담장을 살피는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우리 할머니도 그짓을 해 봤고 며느리도 그짓을 해 봤다. 마을 전체에서 그짓을 안 해 본 집은 없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그게 거름인 것을,
칠뜨기는 오줌은 오줌통에 그리고 대변은 변소에 나누어서 보는 것이 성가시기는 했으나 자리를 옮겨 대변을 보고는 새끼줄로 꼬아 만든 똥털이에 샅을 대고 몇 번 문대고 나서 괴춤을 올렸다. 그리고는 재를 한 삽 듬뿍 떠서 변을 본 곳에 설설 뿌려서 덮었다. 똥털이는 갈아 매단지 얼마 안 되는지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똥털이 새끼줄이 매어 달려 있는 곳에서 한 뼘쯤이나 떨어진 바닥에 항아리 뚜껑이 놓여져 있었고 그 위에 아주 고운 짚꺼푸레기들이 소복이 담겨져 있다. 아마도 딸들을 위한 박 초시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까닭 없이 칠뜨기의 얼굴이 상기 되며 심장의 박동소리가 제 귀에 들려오는 듯 하다.
마당에 나와서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나서 쇠죽을 끓인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쇠가마솥 밑으로 짚을 고루 펴서 넣고 불을 지폈다. 쇠죽은 한번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 불기가 필요치 않아 짚이나 겨로 불을 때서 끓였다. 무쇠 가마솥에는 짚과 쌀겨 밀기울 등이 들어 있었는데 첫날이라고 고구마와 콩깍지까지 넉넉히 들어 앉아 둥둥 떠 다니고 있다.
박초시를 따라 박초시의 집으로 들어온 어제, 박 초시는 칠뜨기에게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농사일을 거들어 줄 것과 쇠장이 서는 날에 함께 쇠장 터에 따라 다닐 것을 주문했고 세경은 일 년에 쌀 세가마를 준다 하였다. 당시 웬만한 집의 장정머슴도 쌀 2가마를 받는 세경이 없었다. 박 초시는 농사일을 맡아 주는 삯으로 쌀 2가마요 1가마는 소를 맡아 주는 것에 대한 삯이라 했다. 칠뜨기는 박 초시에게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거두어만 주신다카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데이. 고맙십니더. 어르신”
“오냐 내 집이라 생각하고 뭐든지 힘껏 해 보그라”
칠뜨기의 등장에 깜짝 놀란 박 초시의 부인은 칠뜨기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퀴퀴한 냄새에 질려 슬며시 코를 쥐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었고 시집을 갈 나이 정도의 과년한 두 딸은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다. 나머지 세 딸은 졸망졸망했는데 막내는 칠뜨기와 비슷한 나이였다. 세 딸들도 덩달아 저들 방으로 들어간 뒤에 문을 빼꼼 열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칠뜨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박 초시 집은 딸 부잣집으로 동리에 소문이 나 있는 터이다.
박 초시의 집에는 홀로 되신 박초시의 어머니와 박초시의 부인 그리고 박초시의 다섯 딸이 함께 살고 있었다. 외양간에는 송아지 두 마리가 있고 마당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개집에는 독구라는 이름의 누렁이가 새끼를 밴 채로 무거운 몸을 하고 있다. 독구는 어지간히 싸낙배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여간해서는 박초시의 집을 기웃거리는 이도 없을 지경이다. 박 초시는 밥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독구를 상당히 아꼈다. 까짓 닭장에서 횃대에 앉아 있는 토종닭 여나믄 마리 정도는 별 것도 아니다. 문제는 다섯 마지기에 달하는 논농사와 포도밭과 포도밭에 딸려 있는 자그만 과수원과 밭뙈기가 문제였다. 칠뜨기의 손과 발이 닳도록 보아 주어야 할 대상들이 대략 이러했다.
비록 창고 옆 머슴방으로 불리는 방이라지만 제 방이 생겼다는 것과 책상까지 놓여져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지난밤은 어찌 잤는지도 모르겠다.
동창에 빛이 드리우니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시린 눈으로 눈을 뜨며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 칭얼대며 아들이라는 존재의 당당한 가치를 알려 주었던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창호지를 뚫고 한 줄기 빛과 함께 쏘아져 들어온다. 시리다. 어깨도 시렵고 등도 시렵다. 칠복은 뒤척이며 그래도 이만하면 되었지 않았느냐고 자위를 해도 도무지 시린 어깨와 등을 어쩌지 못하겠다.
천장을 뚫고 저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을 별들 사이에 칠순이의 별도 떠 있으리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서러운 마음만큼이나 보고 싶다. 시린 어깨와 등짝의 무게만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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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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