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고향 동이
1. 내 고향 동이
이름도 없는 산날망에 올라서니 세월의 자락이 얼마인데도 내 고향 동이의 산천은 그대로이다. 아직 숲은 초록으로 덮이기 전이었고 논바닥에 쭈뼛쭈뼛 솟아 있는 나락들은 모라는 이름을 달고 물고에서 흘러들어 오는 넉넉한 논물에 뿌리를 박고 줄기를 살찌우고 있다. 논바닥에는 초록의 잎으로 뭉글뭉글 몰려 있는 개구리밥으로 가득하다. 가득 둘러 있는 개구리밥은 올챙이들과 몇 안 되는 달팽이를 숨겨주고 있었는데 달팽이의 등껍질은 아직 익지 못했고 연한 속살이 빤히 보이는 어설픈 모양으로 네 개의 촉수를 뻗어 나락 줄기를 타고 고갯짓을 하며 온 몸을 늘이고 있는 중이다.
동구 앞 삽작에 들어서니 나지막한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매캐하다. 나지막이 퍼지고 있는 연기는 무엇이 억울한지 골목 안 어구를 한 번 휘감아 돌고 서서히 흩어지고 있다. 아마 청솔가지로 밥은 짓는 모양이다. 아직 마르지 않은 청솔가지에서 흘러내리는 송진이 탈 때에 나는 매캐한 내음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객의 코를 통해 폐속까지 깊이 고향의 냄새를 아낌없이 선물해 주었다. 고향에 목말라 했던 나는 기지개를 켜며 폐부 가득 청솔가지의 매캐한 내음을 끌어 들였다가 길게 내어 뿜었다. 이윽고 내 몸에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고향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옅은 떨림으로 내 고향 동이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어느덧 낙조가 떨어지며 희미한 어둠이 깔리는 소리가 산날망에서 부터 들려온다. 삽을 손에 쥐고 작대기를 삼아 땅을 쿡쿡찍으며 소에게 먹일 꼴을 한 짐 가득 지게에 싣고 오던 농부는 집 앞에 가까이 왔는지 발걸음이 총총하다. 아이들은 대문에 기대어서 기웃거리며 아버지의 기척을 기다리고 있다가 삽작문을 활짝 열며 제 어미를 부른다. 어지간히 저녁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음메~~
어미 소의 길게 부르는 부름에 답하여 송아지는 잰걸음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어미소가 부르고 있는 외양간으로 고개를 흔들며 달음질을 친다.
“이 마한노무 송아지 냘 모레에는 코뚜레를 해야지 안 되겠구먼. 지랄 담방구질을 저리 쳐대니 사람이 못전디게 생겼어 에잉 쩟쩟”
삽작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들려오는 숙부님의 정겨운 목소리가 짱짱하다.
“숙부님 저 왔습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이게 뉘여. 어서 오니라. 그래 근력은 여전하냐”
“네 숙부님. 숙부님은 더 건강해지신 듯 합니다.”
“그려? 헛헛헛 아녀 인자 나도 다 되었어. 어서 들어서거라”
흐뭇해하시며 반가이 맞아 주시는 숙부님의 얼굴에는 벌써 하얀 수염이 수말의 갈기털처럼 수북하며 여전히 윤기가 흐르며 빳빳하다. 날 뛰는 송아지의 엉덩짝을 흠씬 갈기려다 어미 소의 애절한 눈빛을 보며 슬며시 팔에 힘을 빼며 겨우 헛 매질 하던 손을 거두어 송아지 엉덩짝을 쓰다듬어 준다. 숙부님은 소싯적부터 소장수로 이름을 떨친 어른인지라 소의 눈을 보면 소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훤히 꿰어 뚫을 수 있는 분이다. 엄한 눈으로 어미 소에게 꾸중을 대신한 숙부님은 어미 소와 송아지 몫의 쇠죽을 듬뿍 구유에 담아 놓고 돌아서던 참이다. 구유 안에는 밀기울과 말려 두었던 콩깍지까지 별식으로 듬뿍 담아져 있다. 아마도 며칠 내에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매어줄 모양이다.
“오셨슈 참 오랜만이여유”
숙부의 며느리이자 하영의 부인인 옥화 어머니가 옥화와 함께 정겹게 맞아 준다.
“그 동안 평안하셨지요? 어른들 뫼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옥화는 참 아름다워졌구나. 대견하다”
나는 인사를 극진히 하고 옥화에게 인사를 받았다.
“어여 오는겨 서울 손님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어서 어쪄, 어여 들어가 어여”
화장실에서 씻다 말고 나오는 길인지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손으로 나를 잡아끌며 하영은 하회탈 웃음을 지었다. 세월의 연륜은 하영의 하회탈 웃음에도 주름살이라는 고약한 자취를 남겨 놓았다. 하영은 옥천실고를 졸업하고 해병대 하사를 지원하여 해병대 수색대 초소장을 했다. 제대하고 난 후에 KBS 입사하여 시청료 징수과에 근무 중이다.
“숙부님 그 동안 강령하시고 무탈하셨는지요. 이제 뵙습니다”
숙부께 큰 절을 올려 인사를 드리자 숙부는 자리에 앉아 습관처럼 턱수염을 한 번 쓸며 만면에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답례의 말씀을 건네주신다.
“그려 하는 일은 잘 되는가. 어지간히 바쁠터인디 이리 찾아 주니 고맙네. 에미도 평안하던?”
“네 숙부님 건강하십니다. 일간 찾아뵙겠다고 하십니다.”
숙부께 인사를 마치자 옆에 자리를 붙이고 있던 하영이 이제 내 차례이다 하고는 흥미롭다는 얼굴이다.
“그려 어쩐 바람이 불어 고향을 찾은겨? 고향 냄새가 서울까지 난겨?”
“응 언제나 동이의 냄새가 나지. 멀다는 핑계로 어른들께 자주 인사도 드리지 못하니 개운치가 못혀. 잠시 짬이 나서 생각난 김에 내쳐 달려 왔다네.”
“그러게 말이여 이거 서울 손님이 기별도 없이 암행어사 출두하듯 나타나시니 촌놈들이 벌컥벌컥 놀란단 말이여, 경끼 안 하게끄럼 자주 얼굴을 좀 보여주어”
“고맙네 하영이 그대는 워낙 마음이 씀씀이가 낫낫해서 그런지 아직도 총각같이 젊구먼”
“허어이구 이 사람이 시방 나를 놀리는겨 아니면 욕 보이는겨, 그런 말 말게 옥화 에미 분내네, 그렇잖아도 자기는 늙어 가는디 나는 젊어진다고 구박이 여간 아녀 에헤헤”
하영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옥화 어머니가 시아버지가 눈치를 못 채도록 하영의 옆구리를 오지게 쿡하고 쥐어박는다. 하영은 오지게 쥐어 박힌 옆구리가 뜨끔했던지 눈을 질끈 감고 아야 소리도 못하고 쩔쩔맨다. 하영을 제외한 우리는 옥화가 내온 차를 마셨다.
“차 맛이 좋구나. 옥화 손맛이 좋은 것을 보니 시집을 갈 때가 되었나 보다. 그래 교제하는 남자가 있니?”
“남자는 무신 남자가 있대유. 큰 일이여유. 좀 알아 봐 주셔유”
옥화 어머니의 한 마디의 말에 좌중이 침묵에 빠져 들어갔다. 이제 겨우 27살 밖에 안 된 처녀아이인데 무얼 그리 염려하느냐고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냉각된 분위기에 말을 꺼내지 못하고 슬쩍 눈치를 살펴보았다. 숙부님과 하영이 고개를 떨구고 깊은 한숨을 살며시 내어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차 이거 뭔가가 있는 모양이구나’
나는 누구의 입에서든지 다음 말이 나올 것임을 알았다. 적어도 푸념은 나오리라. 정적을 깬 것은 옥화 어머니였다.
“옥화 말이여유. 시방 나이를 먹도록 연애편지 한 번 쓰거나 받아 본 적이 없슈. 그러니 뭔 연애를 해서 시집을 가것슈. 애즈녘에 연애는 틀렸구. 중매로나 가야 할 팔자인가 봐유. 그러니 어디 좋은 신랑감이 있는지 눈 빼고 찾아 봐 주셔유”
옥화는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깊이 떨구고 있는데 이 일을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옥화 어머니의 극성과 할아버지의 단속이 얼마나 컸을 것이며 평산리 일대는 물론하고 이름깨나 있는 양반들 중에 최자 성자 근자를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만만하게 보이거나 녹록하게 보이거나 할 집안도 아니었고 그럴 정도로 물렁해 터지지 않았다. 수대를 걸쳐 살아오면서 경우 바른 양반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가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 아이들이고 친구들이고 집안까지는 꼬여들지 못했다. 성깔이 대쪽같은 집안인데다 경우가 밝아서 빈틈이 없는 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거기에 옥화 어머니의 극성과 할아버지의 단속이 여간했을까. 눈에 보이듯 그림이 그려진다. 어느 집이나 물론하고 걱정거리는 하나라도 다 끌어안고 산다. 큰일을 치러 면역이 생긴 집에서는 작은 일쯤이야 일도 아니겠으나, 무탈하게 살아 온 집에서는 일도 아닌 것이 일이 되어 걱정거리가 된다.
결혼이라는 것이 인륜지 대사임은 틀림없겠으나 고작 연애결혼이냐 중매결혼이냐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딸은 평생의 애물단지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탈뭇(유대인의 지혜서)에서는 “딸자식은 아비의 평생 근심거리이다.” 라고 정의해 놓고 풀기를 “딸아이는 아들과 달라서 태어나서부터 상대적으로 약하고 호기심은 많아 무슨 일을 낼지 불안하다. 성장하기까지에는 건강하게 잘 자라줄까 하는 것에 걱정이 되어지고, 성장해서는 좋은 남편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걱정거리이다. 시집을 가서는 잘 사는지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면 어쩌나 해서 아비의 밤은 짧다. 아비는 혹시 딸아이가 쫓겨나 집으로 오지는 않을까 해서 방문을 열어 놓고 잔다. 대문에 스치는 딸아이의 망설이는 손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로 풀었다. 평생 걱정거리.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맞는 말만 써 놨다. 나는 숙제를 하나 부여 받고 잠자리에 누워 이리궁리 저리궁리하며 총각들의 명단을 일일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옥화와 맞춰 보았다.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겨? 혹시 옥화 중매 해 달라는 것 때문 아녀?“
“잘도 맞추었네. 그누무 눈치는 여전허구먼 그랴”
내 말에 하영은 특유의 하회탈 웃음을 지었다.
“옥화 에미 말에 신경 쓸 것 없네. 다 때가 되면 갈 것이구 짚신도 짝이 있는디 병신이 아닌바에야 어찌 짝이 없겠는가. 어쨌든 내일 점심때에 민물 매운탕집에 가세.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해야 천국 가는데 일이 없을 것 아닌가벼 아하하”
하영은 내가 민물매운탕 특히 새뱅이가 들어간 매운탕을 아주 별식으로 즐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빠가와 메기를 주 원료로 한 옥천의 별미 어죽탕으로 단단히 맛을 보여주겠단다. 벌써 내 입가에는 달달한 어죽탕맛을 느낀 것 같이 미소로 답해지고 있었다.
“어죽탕? 그려 한 번 맛보자”
열어 놓은 창가에 달빛에 반사되어진 밤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떨고 있다. 풀벌레 소리 중에 유난히 소리가 큰 여치와 배짱이가 콘서트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바로 담장 아래에서 여름밤의 합창을 펼쳐대고 있다. 내 고향에 돌아 왔다. 나는 벽에 대고 횟배를 앓는 아이들처럼 벽에 코를 대고 흙벽 냄새가 풍겨나 주기를 기대해 보았으나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벽에서는 구수하며 싸아한 흙벽냄새를 내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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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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