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탄 멍청한 것은 약도 없다
지난 데이트 때는 만나자 마자 뭉치가 탈북너구리들 이야기를 해대서 짜증이 나서 죽을 뻔 했다. 거기를 건드려 놔서 그런지 날씨가 꼬물거리면 거기가 살살 가려워지고 못 견디게 헛헛해졌다. 그럴 때마다 이런 저런 생각이 하염없이 일어나곤 했는데 생각의 끝은 한 군데였다. 뭉치가 뭐를 하고 있는지가 상당히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둘 다 학교 공부에 바쁜 탓도 있지만 이 작자가 슬금슬금 자신을 피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용용이는 뭉치를 확실히 다잡아 놔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것이 가끔 가다가 문자를 보내도 쌩깐단 말이지. 주것어.
“여보세요. 안녕 씨, 나예요. 지금 뭐해?”
“시방 학교인데 나머지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화 끊어요.”
꼴통 중에 상꼴통인줄은 알았지만 나머지 공부라니, 어지간히 속이 상한 용용이가 휴대폰을 휙 집어 던지려다 말고 반짝하고 뇌리를 스쳐가는 뭔가를 잡았다. 가만,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무슨 킥킥 소리가 나고 짜샤 소리가 난단 말인가. 눈을 이마 끝까지 올리고 골똘히 생각하니 이것들이 어딘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놀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등짝을 스치고 지나간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용용이는 도서실 책상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냅다 어깨에 둘러맸다.
“잡히면 죽었어.”
용용이의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하면서 뭉치가 어디에 있을지를 추측하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디 어디 하면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가 논리적으로 착착 결론이 내려졌다. 욘욘이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나머지 공부라고? 그렇다면 학교에 관련되어 있는 어딘가에 있으렷다.”
그랬다. 뭉치는 아무리 제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해도 꼭 한 가지 단서를 남겼다. 범인은 꼭 범죄현장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처럼 뭉치는 용용이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 용용이가 느닷없이 약속장소를 지정해서 나오라고 하면 죽어도 못 나온다고 했던 뭉치가 1시간쯤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제 딴에는 몸을 숨긴다고 숨기긴 숨겼는데 목이 좀 들어갔다는 것을 빼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숨긴 것이 없다. 모가지를 쑥 집어넣고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로 주위를 이리저리 살폈다. 전봇대 뒤에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던 용용이는 그런 뭉치의 뒤에서 두발당수로 엉덩이를 내차는 동시에 폴짝 뛰어 올라 뒷덜미를 물어뜯었다. 뭉치는 자지러지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처음에는 벼락이 때리는 줄로 알았었다. 다음에는 북한군이 쳐들어 온 줄 알았었다. 무조건 무릎을 꿇고 빌다보면 눈을 떠서 뭐신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싹싹 빌다 눈을 떠 보니 뇬뇬이었다. 뭉치는 눈자위가 휘까닥 뒤집혔다. 그날 밤에 몇 번이나 가위에 눌렸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뭉치는 뇬뇬이와 맞서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하라는 대로 하기로 작심했다. 하지만 이노무 청춘이 문제였다.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여기저기 참견할 데도 많아서 가끔씩 뇬뇬이가 귀찮아질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워낙 총명하고 싹싹한 뇬뇬이인지라 눈치껏 잘 알아서 샤방샤방하게 잘해주니 가끔씩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다.
오늘도 나굴이 친구와 얽힌 꽁깽이하고 나굴이네 학교 근처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로 했다. 혹시 뇬뇬이에게서 전화가 오면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된다. 뇬뇬이는 영특해서 혹시나 자기를 만나느라고 시간을 빼앗겨서 뭉치가 시험에 떨어졌나 보다 하고 머리를 감싸고 미안해서 냐분냐분해 질 것이다. 그 틈에 즐기는 거다. 여자라는 게 좀 백치미도 있고 해야지 남자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으면 그게 여자냐. 피곤하지. 더구나 나이 차이가 두 살 위인 누나가 아닌가. 2살 차이면 대체 그게 얼마냐. 세대차이가 엄청난 꼰대지 꼰대야. 하고는 침을 찌익 뱉고 스케이트보드를 머리에 이고 나왔던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머리에 인 것은 혹시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위장하기 위함이다.
당해보면 안다. 엉덩이를 두발당수로 맞고 헉하는 순간에 뒷덜미를 물렸을 때의 그 아픔과 공포가 투 제곱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눈앞에 아득한 것이 천지분간은 되지 않고 저절로 무릎이 꿇려진 상태가 되는 식겁이 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당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
“야 뭉치야 네가 웬일이냐 침을 다 뱉고. 오래 살다가 보니 별꼴을 다 보겠다.”
“까불지 말어, 쨔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뇬뇬이를 따돌리고 맞이하는 해방감에서 오는 전율같은 해방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다만 눈이 살포시 감기는 것이 무릉도원에 온 듯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꽁깽이와 함께 스케이트보드의 삼매경에 빠져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을 모르겠구나. 나굴이를 비롯하여 여학생 펜들에게 둘러 싸여 꺄꺄 하는 감탄사를 들어가며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되니 기분이가 쓰리쓰리 미 투 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낮 익은 냄새가 코에 살며시 풍겨왔다. 뭉치는 즉시 스케이트보드를 냄새가 나는 반대방향으로 날려 허벌나게 토꼈다. 집 앞 골목에 도달해서는 스케이트보드를 머리에 슬며시 이고 걷기 시작했다. 끼이익 뭐시가 브레이크 당기는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뒤를 돌아보려고 하다가 귀때기를 잡혔다. 뇬뇬이가 사정없이 귀때기를 잡아 당겼다.
“타”
“잘 못 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뒤에 타세요. 뒤에”
“네”
“꽉 잡아요.”
“네”
“좀 더 세게”
“이만큼요?”
“더 세게”
더 세게 잡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뇬뇬이의 등에 낯짝을 꽉 붙였다. 어디로 가시는 길이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볼따구니가 찌그러지도록 뇬뇬이의 등에 붙였기 때문이다. 용용이가 데리고 도착한 곳은 용용이 친구 자취방이었다.
“집으로 전화 하세요. 오늘 친구 집에서 숙제해야 한다고 하세요.”
“엄마, 나 꽁깽이네 집에서 숙제하느라고 집에 못가요. 그런 줄 아세요.”
“뭐야? 못 들어 와? 여보 뇽이가 집에 못 들어 온대네요.”
“그래어? 어히유”
아버지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뭉치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날 잡아 잡수 하고는 용용이가 시키는 대로 냐분냐분 순종했다. 아무래도 초장부터 단추가 잘 못 끼워진 것 같다. 그 때 냅다 토꼈어야 하는 데....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용용이는 말했다. 언제까지 눈치를 보면서 만나야 하느냐. 빨리 양가에 우리들의 교제 사실을 알리고 정식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뭉치는 속으로 가출을 결심했다. 뭉치의 눈을 들여다보던 용용이가 말했다.
“만약 가출을 한다 뭐다 하는 불량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꿈 깨세요. 우리 아버지가 경찰서장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토꼈다가 잡히면 죽음입니다.”
뭉치의 엉덩이에 자동적으로 힘이 주어지며 한 뼘이나 되게 펄쩍 뛰어 올랐다. 뭐시라? 갱찰이 서장이? 오메 뜨거운 거.
“당신 아버지가 경찰서장이에요? 진작 말해 주지 그랬어요.”
뭉치가 용용이 옆구리에 착 하고 감겨 빤짝이 눈을 뜨며 주접을 떨었다. 지난번에 허접한 스케이트보드를 겁나는 값으로 팔아먹은 뭉치를 보고 나굴이가 말했었다.
“안뇽아 너는 사막 한 가운데 떨어져도 전갈튀김을 해서 팔아먹고 살 너구리야. 나는 너를 존경해.”
“그런 말 말어. 이 정도는 약과야. 멍청한 것은 약도 없다고 우리 엄마가 말씀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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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80회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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