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탄 짝퉁 나이코
안경 씨가 헐레벌떡 자리에 앉으니 직원들이 고개를 박고 있다가 멋쩍게 인사를 날린다. 마누라 덕에 오 분이나 지각한 안경 씨는 직원들 얼굴 보기가 민망해졌다. 컴퓨터를 켜고 서류철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여 직원이 커피를 타다 준다.
“미쓰 김, 고마워.”
“아니에요. 부장님. 그런데 사장님이 10분 전에 다녀가셨어요.”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서 겨우 한 모금 입에 넣었을 뿐이다. 안경 씨는 그 뜨거운 커피를 꼴깍 소리가 나게 목으로 넘겼다. 무언가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 입에 있는 것부터 처리를 하고 난 뒤에야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무심결에 취한 행동이다. 이 행동의 결과는 엄청난 반작용의 법칙을 불러 왔다. 들어가는 게 있으면 나오는 게 있다는 것이 너구리 나라의 반작용의 법칙이다. 뜨거운 커피가 목울대를 넘기면서 크악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안경 씨의 눈이 튀어나와 안경을 밀어냈다. 급한 김에 안경을 밀어 넣고 나니 속으로부터 욕이 한바가지나 쏟아져 나와 입안에 가득 물려 있다. 컴퓨터가 첫 화면을 띄웠다. “집 떠나면 개고생 한다”는 광고가 대문짝 만 하게 떠있다.
“씨벌”
신음소리처럼 뱃구레를 진동시키며 나온 소리가 안경 씨의 이빨 사이로 비죽 흘러나왔다. 그 때였다. 여 직원이 차렷 자세로 전화를 받더니 안경 씨에게 말했다.
“안 부장님 사장님 전화입니다. 5번이에요.”
“네 사장님, 안 부장 전화 바꿨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는 안경 씨. 사장의 말은 짧고 간결했다.
“내 방으로 올라오세요.”
“네, 사장님. 지금 당장 뛰어가겠습니다.”
“철꺽”
한 마디라도 좀 더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닝기미, 이왕 짤릴 목숨인데 한 마디쯤 기름을 쳐 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쓰벌. 부글부글 속이 끓어대면서 뚜껑이 열렸다.
“여보 안 부장. 중국에서 우리 상품의 짝퉁이 나왔다는 보고가 들어 왔소. 뭐 아는 게 있는 가해서 불렀어요”
“네, 사장님 아직 전해들은 것이 없습니다만 신속히 알아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안 부장. 안 부장은 그런 점이 시원해. 일처리도 똑 소리가 나도록 완벽하고 말이야. 혹시 다른 마음먹고 있으면 안 되오.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갑시다.”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속히 보고 드리겠습니다.”
안경 씨는 감격했다. 사장이 이토록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단을 뛰어 오르면서 있는 대로 욕을 했던 자신의 뾰족한 주둥이를 쥐어뜯고 싶다. 느긋한 마음이 되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며 있는 대로 졸라맸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거울을 슬쩍 스쳐가며 자신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모가지에는 벌건 자국이 선명했다. 이런 제기랄. 슬쩍 다시 넥타이를 조여 단정하게 맸다.
“다들 모여 봐요.”
안 부장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무언가의 냄새를 맡은 직원들이 재빨리 사무실 중앙에 있는 회의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중국에서 우리 상품의 짝퉁이 출시되었다고 하는데 누구 아는 너구리 있소?”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부장님.”
“그러면 지금부터 한 편은 시장으로 나가서 조사해 보고 한 편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오늘 저녁까지 육하원칙에 입각한 보고서 양식으로 보고하시오. 이상”
“차렷. 경례”
송 과장의 구령에 따라 모두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경 씨는 흐뭇한 마음으로 경례를 받으며 송 과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송 과장은 더 잘 모시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부장님 사모님 전화셔요. 5번이에요.”
미스 김이 깍듯하게 존칭을 하며 급 방긋 모드로 전화 코드를 바꿔준다.
“무슨 일이오.”
다소 퉁명하게 말했다.
“여보, 오늘 분위기 좋지요? 어제 아침에 시징님 사모님으로부터 전화 받았었어요. 안 부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화였어요.”
“닝기미,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 줘야지 속이 박박 타서 썩을 뻔 했잖아. 이따가 집에 가서 봐요.”
“호호호, 니중에 보자는 너구리는 안 무섭더라. 여보 수고해용”
안경 씨는 호수 씨가 노골 노골하게 하룻밤을 서비스 해주던 생각이 나서 이러쿵저러쿵 속으로만 씨불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하긴 다 수가 있으니까 놀라고 했던 것이지, 이노무 마누라 그렇다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어야 마음 편히 쉬었을 것 아냐.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을 누비고 다녔던 직원들이 돌아왔다. 한 켤레씩 들고 온 운동화에는 나이코 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상표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나이크로 이름을 붙인 안경 씨의 국제상사는 고가의 나이키 운동화 시장에서 이럭저럭 틈새에서 먹고 살아왔다. 특히 중국시장에는 나이키 보다 나이크가 원조라는 말이 떠 돌 정도로 인기를 누려왔다. 워낙 짝퉁의 대가들이 죄다 중국에 몰려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차에 “나이코”라니 아나 이거나 먹어라. 안경 씨는 마침내 뚜껑이 열렸다. 나이코 상표가 붙어 있는 운동화를 바닥에 내 동댕이치고 난 뒤에 발뒤꿈치로 콱콱콱 세 번을 찍어 밟고 난 뒤에 온몸에 체중을 실어 비틀어버렸다.
인터넷 검색팀은 이 꼴을 보고 움찔움찔 하며 목을 움츠렸다. 슬며시 일어나 안 부장이 발로 박박 밟아 놓은 나이코 운동화를 가져다 놓고 이리저리 비틀어보고 눌러보면서 나이코 운동화의 약점을 조사했다. 메모지에는 앞코와 발꿈치 부분의 접합부분이 치밀하지 못한 것과 운동화의 직물 조직이 열악하다는 것, 깔창 부분은 형편없는 부직물로 마감되어 있다는 것 등이 나열되었다.
“우리 제품과 비교하여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작성해요. 외관부터 내피까지 전체를 비교해서 약점과 강점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보고하도록 해요.”
“네, 부장님. 정확하게 분석하여 보고 드리겠습니다.”
짝퉁은 아무리 해도 짝퉁에 불과하다. 값을 낮추기 위해 제조원가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량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래도 안경 씨의 국제상사는 나이키의 OM 형태로 운동화를 제작해 왔다. 나이키에 적용되는 과학적인 기준치는 국제상사에서 개발했고 나이키의 임원진들과의 협의를 통해 제품화했다. 비록 나이키와 다른 배를 타게 되어 어쩔 수없이 나이크라는 이름으로 운동화를 제작하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오늘의 나이키 운동화를 탄생시킨 산 주역이다. 나름대로 자긍심을 가질 만했다. 그런데 이게 뭐냐. 나이코라니 그러면 나이코는 싸이코들이 신고 다니는 허접한 운동화란 말이냐. 이리저리 열불이 터진 안경 씨의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안경 씨는 화장실에 가서 가래침을 퇘액하고 뱉었는데 입을 통해 나오는 가래침은 구리면서도 짭짤했다. 아마도 어제부터 속을 끓여서 어혈이 생겼는데 그 어혈이 녹아서 목구멍으로 올라 왔나 보다. 퉤 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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